회사에서 AX를 빠르게 확대하면 기대와 함께 피로감도 커진다. 익명게시판에서 이런 논쟁을 본 적이 있다. “AI를 만드는 사람들이 코딩 에이전트에 의해 먼저 대체될 것이다.” 반대편에서는 “AI가 도입되는 현업이 먼저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더 안전한지를 따지는 싸움이다.
이 반감에는 AI 자체보다 AX를 추진하는 방식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는 별도의 글에서 다뤄보려 한다. 지금 흥미로운 것은 다른 지점이다. AI팀과 현업 중 누가 먼저 사라질까?
나는 질문의 단위가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AI는 조직도를 한 번에 지우기보다, 직무 안에 섞여 있던 일을 하나씩 분해한다.
직무보다 과업이 먼저 바뀐다
한 사람의 직무는 하나의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시장 정보 분석 담당자는 자료를 찾고, 읽고, 정리하고, 수치를 분석한다. 모델을 만들고 가설을 세우며 보고서를 쓴다. 관련 부서와 조율하고 자신의 분석을 설명하며 의사결정을 돕는다.
이 가운데 자료 검색과 정리, 분석 초안 작성은 에이전트에 맡기기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질문을 던질지, 데이터에 없는 시장 맥락을 어떻게 반영할지, 상충하는 해석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같은 속도로 옮겨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AI → 직업 → 대체 순서로 생각한다. 실제 업무에서는 직무 → 과업 분해 → 일부 자동화 → 역할 재조합 순서가 더 유용한 관찰 틀이다. “분석가가 대체된다”보다 “분석가가 하던 일의 구성이 바뀐다”가 현재의 변화를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자동화는 조직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과업 목록에서 시작된다.
역할 구분은 예시다. 같은 과업도 위험과 검증 방식에 따라 배분이 달라진다.
AI 2040의 경제 분석도 자동화를 직업 이름보다 경제적으로 중요한 과업의 관점에서 모델링한다. 다만 그 문서가 가정하는 자동화 속도는 매우 공격적이다. 여기서는 그 결론이 아니라 과업을 분석 단위로 삼는 방법만 빌려온다.
AI팀도 자동화의 바깥에 있지 않다
이 관점으로 보면 AI팀이 먼저 바뀔 것이라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코드와 저장소는 디지털이고, 많은 결과를 테스트할 수 있으며, 피드백도 비교적 빠르다. 코딩, 단위 테스트, 반복 코드, 디버깅, 문서화, 연동 코드, 배포 설정과 평가 스크립트의 상당 부분은 에이전트가 수행할 여지가 있다.
AI 2040의 2027년 시나리오 역시 AI 기업이 특히 자동화하고 싶어 하는 업무로 자체 AI 연구개발을 묘사한다. 이것은 시나리오 속 설정이지 어느 회사의 AI팀이 곧 사라진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래도 “AI를 만드는 팀이니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을 다시 보게 만든다.
AI가 구현 작업을 더 많이 맡는다면 AI팀의 중심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어떤 업무를 AI화할지 정하고, 에이전트 구조와 모델 선택 방식을 설계하며, 데이터 접근 권한과 보안을 관리한다. 결과를 평가하고, 오류를 관찰하며, 사람이 개입해야 할 지점과 비용 한도를 정한다. 개별 모델과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역량에 더해 플랫폼, 워크플로, 평가, 거버넌스를 설계하는 역량이 중요해진다.
AI가 코드를 더 많이 작성할수록 AI팀은 코딩 조직보다 시스템 설계 조직에 가까워질 수 있다. AI팀의 일부 과업이 빠르게 자동화된다는 것과 AI 조직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현업의 일도 다시 묶인다
현업 역시 정보 탐색, 반복 분석, 모니터링, 시뮬레이션, 보고서 초안 작성에 쓰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렇다고 업무의 나머지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고객이 말하지 않은 제약을 알아차리는 일, 현실에 맞는 가정을 고르는 일, 예외를 처리하는 일,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일은 조직의 맥락과 연결된다. 무엇보다 정답을 만드는 것과 그 정답에 책임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현업 담당자가 앞으로도 모든 자료를 직접 찾고 모든 슬라이드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목표를 정의하고, 에이전트에 일을 맡기고, 결과를 검증하고, 반론을 요청한 뒤 의사결정을 돕는 쪽으로 시간이 옮겨갈 수 있다. 실행에 많은 시간을 쓰던 역할이 맥락과 판단, 책임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역할로 바뀌는 것이다.
사람 한 명이 작은 에이전트 조직과 일한다면
AI 2040의 Plan A는 2027년을 배경으로 인간과 AI 에이전트라는 두 노동력이 공존하는 세계를 그린다. 2028년에는 많은 사무직이 에이전트를 관리하는 형태로 바뀌는 시나리오도 제시한다. 저자들은 Plan A를 미래에 대한 최선의 예측이 아니라 정책 제안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검토하기 위한 시나리오라고 설명한다. 이 시간표를 기업의 예측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 사고실험을 기업 안으로 축소해보자. 한 명의 시장 정보 분석 담당자가 여러 조사 에이전트에 서로 다른 자료를 조사하게 하고, 시뮬레이션 에이전트에 가정을 바꿔 보게 하며, 검토 에이전트에 분석의 빈틈을 찾게 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일은 모든 단계를 직접 수행하는 것보다 결과의 방향과 품질을 책임지는 데 가까워진다.
에이전트가 나누어 수행
부족하면 반론과 재분석을 요청 ↺
AI 2040의 ‘두 노동력’에서 착안한 The Archive의 개념도. 원본 도표를 복제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조직의 역량을 사람 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인간의 역량에 에이전트의 역량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에이전트 수가 많다고 곧바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목표를 여러 에이전트에 빠르게 배분하면 잘못된 결과도 빠르게 늘어난다. 모든 사무직이 ‘에이전트 관리자’가 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업무에 따라 직접 수행하는 부분과 위임하는 부분의 비율은 달라질 것이다.
무엇이 먼저 에이전트로 넘어갈까
과업이 이동하는 속도를 생각할 때 나는 다섯 가지를 본다. 규칙을 얼마나 명확히 쓸 수 있는가, 필요한 데이터가 디지털로 존재하는가,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가, 피드백을 얼마나 빨리 얻는가, 실패했을 때 비용과 책임이 얼마나 큰가.
같은 과업도 데이터, 규제, 오류 비용에 따라 달라진다. 직업별 순위나 도입 시점은 아니다.
이 기준에서는 코드 초안이나 문서 요약처럼 입력과 결과를 확인하기 쉬운 일이 상대적으로 빨리 이동할 수 있다. 반면 협상이나 최종 승인처럼 맥락과 책임이 큰 일은 더 신중한 도입이 필요하다. 같은 직무 안에서도 과업마다 조건이 다르다. 기술이 가능해져도 데이터 접근, 비용, 검증 체계, 조직의 수용 여부에 따라 실제 도입 속도는 달라진다.
조직은 남아도 인원은 달라질 수 있다
“AI팀과 현업이 모두 역할을 갖는다”는 말이 현재 인원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뜻은 아니다. 두 조직 모두 더 적은 인력으로 같은 양의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같은 인력으로 이전에는 시간과 비용 때문에 못 하던 분석이나 서비스를 새로 만들 수도 있다.
생산성 향상을 비용 절감에 쓸지, 산출물 확대에 쓸지는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회사의 전략과 수요, 경쟁 상황에 따라 조직 규모는 달라진다. 이 문제를 건너뛴 채 “사람의 역할은 남는다”고만 말하면 현장의 불안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동시에 두 조직의 경계는 흐려질 수 있다. AI팀은 실제 업무의 맥락을 더 깊이 알아야 하고, 현업은 AI 시스템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디에서 실패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AX 아키텍트, AI 제품 책임자, 도메인 AI 책임자 같은 직함이 등장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명칭이 아니다. 기술과 업무 사이에서 업무 흐름을 설계하는 기능이다.
정말 먼 미래에는 둘 다 사라질까
먼 미래에 거의 모든 인지노동이 자동화될 가능성까지 내가 단정할 수는 없다. AI 2040의 경제 분석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과업 대부분이 자동화되는 매우 공격적인 장기 가정을 검토한다. 저자들 역시 이러한 AI 역량 전망이 주류 경제학자들의 전망과 크게 다르다고 밝힌다. 그 정도의 시간축에서는 나도 모르겠다.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 조직이 영원히 안전하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기업 AX에서 관찰하고 설계해야 할 변화의 기본 단위가 부서 삭제보다 과업 재배치에 가깝다는 것이다.
익명게시판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AI팀과 현업 중 누가 먼저 사라질까?
먼저 사라지는 것은 부서라기보다, 각 부서 안에서 사람이 직접 수행하던 과업일 가능성이 높다. AI팀은 구현에서 플랫폼과 시스템 설계로, 현업은 직접 실행에서 문제 정의와 판단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수 있다.
결국 AI가 바꾸는 것은 사람의 존재 여부보다, 사람이 조직 안에서 어디에 시간을 써야 하는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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